'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이 나온지 10년이 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때로서는 믿기 힘든 국내 출시. 친구가 빌려와서 보게 된 1편. 그 이후로 그 친구는 에바 광이 되었고, 1년 뒤던가 그녀석이 어디서 구해온 Death and Rebirth 백업시디로 처음 제대로 감상했다. 그리고 또 1년 뒤던가? End of Evangelion이 나왔을때 또 용산으로 달려가 백업시디를 구해다가는 같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극장판을 네번, TV판을 두번 감상했다. 그리고 이번 두 번째 TV판 감상에서야 제작진이 에반게리온을 통해 하고싶은 말이 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End of Evangelion을 보면서 예전 TV 시리즈와의 사실관계를 추측하기만 하다가 오히려 복잡해서 골치아팠었다. 그러고 얼마 전 룸메와 함께 극장판을 다시 감상할 때는 그냥 이해를 포기하고 '감상'에만 몰두했다 - 사실 내가 평론가가 아닌 이상 이해해고 해설하는건 무의미한 짓일지도.. - 때로는 감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갈 데까지 간 그로테스크한 영상미, 거기에 역설적으로 울리는 클래식 풍의 BGM을 느끼면서, 오히려 그 전까지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룸메가 ipod에 담아놓은 에바 TV판을 심심해서 조금씩 봤다 - 그러면서도 '멀쩡한 모니터 놔두고 왜 이런 조그만 화면으로 보려고 하냐고 뭐라뭐라 했다;; - 그리고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감독은 결국 극장판에서는 TV판 24화 내내 하고 있던 말을 두시간동안 다시 지껄이고 있었던 거다. End of Evangelion은 영상미 뿐인, 결국 의미는 없는 영화일 뿐이었다. 영화라기 보다는 영상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시 TV판 일부를 보면서 극장판에서 보였던 주제의식과 메시지를 찾을 수 있었다. 사소한 장면과 대사에서, 극장판에서보다 더 심오하고 자세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2시간동안 기를 쓰고 뱉어내려던 감독의 배려(?)와 분노에 건배.
어쩌면 에바라는 메카닉, 미소녀계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창조적인 캐릭터 아야나미 레이, 세컨드 임팩트와 이카리 도우, 제레 사이에 얽힌 시나리오와 음모 등에 정신을 빼앗겨 정작 본질을 무시했던 관객의 수준이 떨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노무 감독이 스케일을 너무 크게 만들어버렸는걸 =_=;;; 나도 예전까지는 그런데 휩쓸렸으니.. 그런데 득도의 경지에 이르고 대충 이해하고 나니 스토리 역시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풀린다. 신기하다.
에반게리온의 주제의식이 뭐니 감독이 그토록 하고싶었던 말이 뭐니 그런건 설명하지 않는다. 내가 안노 감독도 아니고, 워낙에 이쪽 분야에는 고수들이 많으셔서 말하기도 겁나고, 사실 내가 느끼고 있는 바를 글로 표현할 자신도 별로 없다. 아무튼 요즘 에반게리온의 새로운 재미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