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새벽에 있었던 김병현 선발경기를 말하는 겁니다.
아쉽게도 3시에 잠깐 누워있으려다 아침까지 자버려서 못 봤습니다만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보니 멋지더군요.
시즌 초반의 과감한 (but 무모한) 승부 일변도에서 벗어나 타자를 현혹시키는 투구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궤적을 그리다가도 어느쪽으로 흘러갈 지 모르는 잠수함 특유의 무브먼트를 효과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14이닝 무실점 기록이던가요? 올시즌 자주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1~2년 정도 선발로서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김병현의 솟아오르는 슬라이더와 업슛이 ML에서 가장 치기 힘든 구질 Best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승부사 김병현의 남은 시즌동안의 활약도 기대해봅시다.
콜로라도 로키스가 덴버에 둥지를 튼 1993년 이후, 많은 투수들이 이곳에서 던져왔고, 그중 대다수의 선수들은 (낮은 동네의 야구장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산을 내려갔다. 낮은 대기압, 습도로 인한 타구 비거리의 엄청난 증가,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Coors Field다.
많은 코칭스태프들과 투수들은 '이땅에 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고, 여러가지 방법론을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 대부분은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고.. 로나 웹 같은 땅볼 투수를 만드는 것도 한가지 해법으로 제시되었으나 이 또한 성공하지 못했다 한다.
그야말로 안구에 쓰나미가 넘쳐흐르는 이런 동네에서 꿋꿋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남자가 있으니 2005년 웨이버로 COL 유니폼을 입게 된 김병현이올시다. 2002년 ARI에서 우승반지까지 얻고, 클로져로 맹 활약을 했었던 그. 그 와중에도 어렸을 적부터 꿈꿨던 선발을 욕심내며 주위 사람들을 걱정시켰더랬다. - 이때쯤 메이저리그의 일반적인 에이스와 마무리 투수의 연봉을 비교하면서 돈 욕심 내지 말라는 기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병현 성격에 돈이 눈에 들어왔을리가 없다;;; FA가 되고서도 COL에 잔류한 걸 봐도 그렇지 않나;; - 부상 -> 보스턴으로의 트레이드 -> 끝없는 재활 -> 웨이버 공시를 거쳐 COL로 왔으나 그렇다할 보직을 얻지 못해 다시 방출될 뻔 했으나 타이밍 좋게 로테이션에 구멍이 나면서 이제는 콜로라도에 없어서는 안될 투수가 되었다.
오늘 경기까지 김병현의 홈 성적은 1승 무패 방어율 3.16 14K다. 시즌 초반이고, 세인트루이스 원정에서 신나게 두들겨맞았던 걸 감안해도 원정 방어율의 반 밖에 안된다. 2005년 성적도 홈/어웨이가 4.50/5.34다. 콜로라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파크팩터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선수다.
그가 던지는 걸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김병현의 최대 무기는 이른바 '공에서 냄새나는' 지저분한 패스트볼이나 예리한 슬라이더 보다도 옆에서 지켜보기 무서울 정도의 대담한 자신감이다. 스트라이크를 넣고 싶을 때는 찔러 넣는다. 쳐 볼테면 쳐보라는 뻔뻔함이야말로 투수에게 있어 소중한 보물인 것 같다. 세인트루이스 전에서는 그게 너무 과해 적극적으로 나선 살인타선에 무너졌다. 그래도 씩 웃으면서 "다음부터는 더 생각하고 던지겠다"고 돌아서는 그 모습에서 그만이 보이는 카리스마를 느꼈다.
김병현 등판 경기는 내용과 결과를 떠나서 항상 재미있다 - 그 재미가 코칭스탭에게는 살벌함으로 다가오겠지만 - 유리한 볼카운트다 싶으면 그냥 가운데로 쭉쭉 찔러넣어버리니 보고 있는 사람이 다 서늘하다. 그러다 홈런을 맞아도 한번 씩 웃고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가운데에 뿌리고 있으니 무슨 열혈고교야구만화를 보는 것 같다. 그런 순수함(?)이 최고의 매력이다.
그래도 역시 순수함 만으로 먹고살기는 힘든게 현실인지라;; 팬으로써 조금 더 교활해졌으면 하는 소망이 살짜쿵 있다. 교활하게 리드해줄 수 있는 포수 (우리나라에서 박경완이나 홍성흔 같은)가 있으면 순식간에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올시즌 기대해본다. 조금 더 안정된 모습만 보여주면 콜로라도의 역사에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